방문일 : 2008년 1월 18일
카이로에서 알렉산드리아까지 17명이 1일투어를 신청했다.
아침 8시에 도끼의 집앞에서 출발. 3시간만에 알렉스 도착. 저녁 8시 20분경에 다시 카이로 도착.
알렉스 너무 깨끗하고 좋았는데 하루에 갔다오기는 참 아쉬운 여행지였다.
나중에 또 꼭 가고싶은 지역.^^(결국 나중에 또 가긴 했는데 2박 3일 내내 비왔다 ㅠ_ㅠ)
알렉산드리아 일일투어요금 : 1인당 120P(입장료 불포함)
(운전기사와 가이드에게 팁을 따로 50P씩 줬다. 120P씩 걷어서 남은돈으로...)
시타델 입장료 : 학생 10P, 성인 20P
폼페이 기둥 유적 입장료 : 학생 10P, 성인 20P
카타콤베 무덤 입장료 : 학생 15P, 성인 30P
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입장료 : 학생 5P, 성인 10P
OO공원 입장료 : 비싸지 않았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.
아놔- 이때 필름이 다 떨어져서 사진을 많이 못찍었다. ㅠ_ㅠ
할 수 없이 다른 애들 디카로 만족할 수밖에 었었다.
도서관에 안에 입장할 때는 가방같은걸 들고 갈수 없다.
짐은 다 차에 놓고 내리고 지갑이랑 카메라 두대만 달랑 들고 들어왔다.

#1. 컴퓨터 이용시설과 그외 전시해놓은 것들.
여기서 설정사진 찍기 놀이에 여념이 없어서 다른 구경은 잘 못했다. 아쉬워... ㅠ_ㅠ
(내용 출처 : 동아일보, 2003년 05월 05일)
현재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건립을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유네스코에 요청하였고
유네스코는 이를 수락하고 기금을 모아서 지금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건립된 것이다.
총 건립비용 : 2억 2500만 달러
그중 6,500만달러 : 아랍에미리트, 사우디아라비아, 이라크, 오만,
아가 칸 재단(이슬람 재단)
3,300만달러 : 프랑스, 스페인, 독일, 이탈리아, 마이크로소프트사 등
27개 국가 및 법인이 부담.
<각국의 기증 내용>
노르웨이 : 도서관 집기와 가구 기증. (노르웨이 BA 친선협회 : 현관의 가구와 집기)
캐나다 : 마루의 소음을 흡수하는 재질의 참나무
짐바브웨 : 건물을 지탱하는 검은 대리석
이집트 아스완 : 외벽의 화강암
스웨덴 : 도서관의 사무실 가구
오스트리아와 그리스 BA 친선협회 : 도서관을 소개하는 안내 책자들
불가리아 : 1000점의 자료를 기증
그리스 : 고대 도서관을 건축한 데미트리우스의 동상을 헌정
다임러크라이슬러 : 메르세데스 버스 2대
지멘스 : 인터넷 카페를 기증
프랑스 : 정보처리 교육
독일 : 자료 자동 운송기기
일본 : 시청각시설
핀란드 : 도서 기증
브루스터 칼리(샌프란시스코에서 알렉사인터넷 벤처기업을 창립한 사람) : 10억 페이지의
인터넷 정보 보관소를 통째로 기증

#2.
국제사회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건립에 호의적이었던 이유?
위에서 언급한 칼리 사장 曰,
“고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1600년 전 사라지기 전 300여년간 존속하면서 인류 문명에
기여한 공로를 잊지 않고 있기 때문”이라고...

#3.
(내용 출처 : 동아일보, 2003년 05월 05일)
87년 건축디자인 국제 공모 : 노르웨이 설계회사인 스노헤타의 작품이 당선
본관 정면 : 지중해를 향해 태양을 빨아들이는 형상
회색 화강암 외벽 : 전세계 120개 언어의 알파벳이 있고 한글도 '월,세,강,름' 글자가 세겨져 있음.
93년에 착공을 시작하였으나 땅을 파자 동상, 스핑크스 같은 고대 유물이 쏟아져 나와 2년간
110점의 유물을 발굴한 뒤 95년 다시 착공해 7년만에 완공.

#4. 도서관 외부. 저 위도 걷고싶었는데... 투어라서 시간이 너무 없었다.
히 둘러보지 못해 쉬웠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.
(내용 출처 : 동아일보, 홍은택기자 euntack@donga.com, 2003년 05월 05일)
고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알렉산더 대왕 이후 이집트를 다스린 마케도니아 출신 프톨레마이오스 1세가 기원전 288년 설립했다. 프톨레마이오스 1세는 당대의 학자들이 함께 모여 토론하고 연구하는 곳을 만들고 싶어 했다. 이 점에서 고대 도서관이 그리스 또는 이집트 문화의 소산인지에 대해 논란이 있어 왔다. 지금은 양쪽의 문화가 조화를 이룬, 양국 모두 자랑스럽게 공통의 역사적 자산으로 받아들이는 곳이 됐다.
이 도서관에서 연구한 학자로는 △지동설을 최초로 주장한 아리스타르코스 △태양의 운동법칙을 불과 6분30초의 오차로 밝혀낸 천문학의 아버지 히파르코스 △지구의 둘레를 최초로 계산한 에라토스테네스 △기하학의 기초를 세운 유클리드 △위대한 고대 수학자 아르키메데스 △도서관학의 아버지 칼리마코스 등이 있다. 히브리어로 돼 있던 구약성서가 그리스어로 번역된 곳도 이곳이다.
당시 모두 양피지 70만 두루마리의 자료가 소장돼 있었다. 1 두루마리가 책 160권의 분량이었다고 전해지고 있는 만큼 자료의 규모가 얼마나 방대했는지 알 수 있다. 당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지중해를 지나가는 선박을 멈추게 해 자료를 모두 필사한 뒤 사본을 돌려주고 원본을 도서관에 보관했다고 한다.
그러나 기원전 48년 로마의 줄리우스 카이사르 황제가 이집트 공략 당시 이집트 함대에 붙인 불이 도서관에 옮아 붙어 건물 일부를 태웠다. 3세기경 로마 군대가 알렉산드리아에 수 차례 침입, 도서관과 박물관이 있던 궁전을 불태움으로써 도서관은 역사의 잿더미로 변했다.
그러나 도서관이 기여한 문화적 과학적 자산은 인류의 유산으로 남았고 그 기억으로 다시 1600여년 만에 초현대식 도서관으로 살아났다.
- 2008년 1월 18일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-
카이로에서 알렉산드리아까지 17명이 1일투어를 신청했다.
아침 8시에 도끼의 집앞에서 출발. 3시간만에 알렉스 도착. 저녁 8시 20분경에 다시 카이로 도착.
알렉스 너무 깨끗하고 좋았는데 하루에 갔다오기는 참 아쉬운 여행지였다.
나중에 또 꼭 가고싶은 지역.^^(결국 나중에 또 가긴 했는데 2박 3일 내내 비왔다 ㅠ_ㅠ)
알렉산드리아 일일투어요금 : 1인당 120P(입장료 불포함)
(운전기사와 가이드에게 팁을 따로 50P씩 줬다. 120P씩 걷어서 남은돈으로...)
시타델 입장료 : 학생 10P, 성인 20P
폼페이 기둥 유적 입장료 : 학생 10P, 성인 20P
카타콤베 무덤 입장료 : 학생 15P, 성인 30P
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입장료 : 학생 5P, 성인 10P
OO공원 입장료 : 비싸지 않았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.
아놔- 이때 필름이 다 떨어져서 사진을 많이 못찍었다. ㅠ_ㅠ
할 수 없이 다른 애들 디카로 만족할 수밖에 었었다.
도서관에 안에 입장할 때는 가방같은걸 들고 갈수 없다.
짐은 다 차에 놓고 내리고 지갑이랑 카메라 두대만 달랑 들고 들어왔다.
#1. 컴퓨터 이용시설과 그외 전시해놓은 것들.
여기서 설정사진 찍기 놀이에 여념이 없어서 다른 구경은 잘 못했다. 아쉬워... ㅠ_ㅠ
(내용 출처 : 동아일보, 2003년 05월 05일)
현재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건립을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유네스코에 요청하였고
유네스코는 이를 수락하고 기금을 모아서 지금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건립된 것이다.
총 건립비용 : 2억 2500만 달러
그중 6,500만달러 : 아랍에미리트, 사우디아라비아, 이라크, 오만,
아가 칸 재단(이슬람 재단)
3,300만달러 : 프랑스, 스페인, 독일, 이탈리아, 마이크로소프트사 등
27개 국가 및 법인이 부담.
<각국의 기증 내용>
노르웨이 : 도서관 집기와 가구 기증. (노르웨이 BA 친선협회 : 현관의 가구와 집기)
캐나다 : 마루의 소음을 흡수하는 재질의 참나무
짐바브웨 : 건물을 지탱하는 검은 대리석
이집트 아스완 : 외벽의 화강암
스웨덴 : 도서관의 사무실 가구
오스트리아와 그리스 BA 친선협회 : 도서관을 소개하는 안내 책자들
불가리아 : 1000점의 자료를 기증
그리스 : 고대 도서관을 건축한 데미트리우스의 동상을 헌정
다임러크라이슬러 : 메르세데스 버스 2대
지멘스 : 인터넷 카페를 기증
프랑스 : 정보처리 교육
독일 : 자료 자동 운송기기
일본 : 시청각시설
핀란드 : 도서 기증
브루스터 칼리(샌프란시스코에서 알렉사인터넷 벤처기업을 창립한 사람) : 10억 페이지의
인터넷 정보 보관소를 통째로 기증
#2.
국제사회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건립에 호의적이었던 이유?
위에서 언급한 칼리 사장 曰,
“고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1600년 전 사라지기 전 300여년간 존속하면서 인류 문명에
기여한 공로를 잊지 않고 있기 때문”이라고...
#3.
(내용 출처 : 동아일보, 2003년 05월 05일)
87년 건축디자인 국제 공모 : 노르웨이 설계회사인 스노헤타의 작품이 당선
본관 정면 : 지중해를 향해 태양을 빨아들이는 형상
회색 화강암 외벽 : 전세계 120개 언어의 알파벳이 있고 한글도 '월,세,강,름' 글자가 세겨져 있음.
93년에 착공을 시작하였으나 땅을 파자 동상, 스핑크스 같은 고대 유물이 쏟아져 나와 2년간
110점의 유물을 발굴한 뒤 95년 다시 착공해 7년만에 완공.
#4. 도서관 외부. 저 위도 걷고싶었는데... 투어라서 시간이 너무 없었다.
히 둘러보지 못해 쉬웠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.
(내용 출처 : 동아일보, 홍은택기자 euntack@donga.com, 2003년 05월 05일)
고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알렉산더 대왕 이후 이집트를 다스린 마케도니아 출신 프톨레마이오스 1세가 기원전 288년 설립했다. 프톨레마이오스 1세는 당대의 학자들이 함께 모여 토론하고 연구하는 곳을 만들고 싶어 했다. 이 점에서 고대 도서관이 그리스 또는 이집트 문화의 소산인지에 대해 논란이 있어 왔다. 지금은 양쪽의 문화가 조화를 이룬, 양국 모두 자랑스럽게 공통의 역사적 자산으로 받아들이는 곳이 됐다.
이 도서관에서 연구한 학자로는 △지동설을 최초로 주장한 아리스타르코스 △태양의 운동법칙을 불과 6분30초의 오차로 밝혀낸 천문학의 아버지 히파르코스 △지구의 둘레를 최초로 계산한 에라토스테네스 △기하학의 기초를 세운 유클리드 △위대한 고대 수학자 아르키메데스 △도서관학의 아버지 칼리마코스 등이 있다. 히브리어로 돼 있던 구약성서가 그리스어로 번역된 곳도 이곳이다.
당시 모두 양피지 70만 두루마리의 자료가 소장돼 있었다. 1 두루마리가 책 160권의 분량이었다고 전해지고 있는 만큼 자료의 규모가 얼마나 방대했는지 알 수 있다. 당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지중해를 지나가는 선박을 멈추게 해 자료를 모두 필사한 뒤 사본을 돌려주고 원본을 도서관에 보관했다고 한다.
그러나 기원전 48년 로마의 줄리우스 카이사르 황제가 이집트 공략 당시 이집트 함대에 붙인 불이 도서관에 옮아 붙어 건물 일부를 태웠다. 3세기경 로마 군대가 알렉산드리아에 수 차례 침입, 도서관과 박물관이 있던 궁전을 불태움으로써 도서관은 역사의 잿더미로 변했다.
그러나 도서관이 기여한 문화적 과학적 자산은 인류의 유산으로 남았고 그 기억으로 다시 1600여년 만에 초현대식 도서관으로 살아났다.
- 2008년 1월 18일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-




